C-Pg 대멸종(Cretaceous-Paleogene Extinction, 중생대 백악기와 신생대 고 제3기 사이에 일어났던 생물 대멸종)은 지금으로부터 약 6,500만 년 전 공룡을 포함해 지구 전체 생물종의 60%(이 수치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가 사라진 사건이다. 1980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물리화학자 루이스 앨버레즈Luis W. Alvarez와 그의 동료들(월터 앨버레즈Walter Alvarez, 프랭크 아사로Frank Asaro, 헬렌 미첼Helen Michel)은 이 사건의 범인이 지구 밖 우주에 있을 거라고 주장했는데, 이번 포스트는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증거를 언급하고자 한다.
이리듐과 흠집 난 수정 결정의 발견
1980년, 앨버레즈는 이탈리아 구비오Gubbio에 있는 중생대 백악기Cretaceous와 신생대 고 제3기Paleogene 사이의 점토층에서 이리듐(iridium) 함량이 다른 곳과 다르게 상당히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리듐은 지구 표면에서 보기 드문 희귀한 금속이지만 운석에는 다량으로 함유돼 있다. 이를 근거로 앨버레즈는 점토층의 이리듐이 우주에서 온 것이라고 판단, 그해 미국 사이언스지에 C-Pg 대멸종이 운석 충돌에 의한 것임을 시사하는 논문을 냈다.
1984년, 미국 지질조사국United States Geological Survey, USGS의 브루스 보어Bruce F. Bohor를 중심으로 한 연구팀도 C-Pg 대멸종이 운석 충돌로 인한 것임을 보여주는 근거를 제시했다. 그들은 C-Pg 경계층의 모래 알갱이에서 독특한 흠집이 있는 수정 결정을 찾아냈는데, 그 흠집은 혜성이나 소행성 충돌, 핵무기로 인한 폭발이 일어날 때 생기는 ‘충격 수정shocked quartz’의 모습과 같았다.
이리듐은 지구 속 깊숙한 곳에 다소 많은 양이 있어 화산 폭발에 따라 지면으로 나올 수 있다. 미국의 전파천문학자 게릿 버슈Gerrit L. Verschuur는 그의 저서 『대충돌(원제 : Impact!: The Threat of Comets and Asteroids)』을 통해 이리듐이 화산 폭발로 분출될 수 있으나 현재 이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완전히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았다. 공룡 멸종 당시 지면으로부터 지구 깊숙한 곳까지 마그마 통로가 있었다면 화산 분출로 인해 이리듐이 지표로 흘러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흠집 난 수정 결정 또한 극심한 화산활동에 따라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충격 수정은 혜성이나 소행성 충돌과 같은 막대한 폭발이 일어날 때 생긴다. 여기서 눈여겨야 할 점은 충돌이 아니라 ‘폭발’이다. 오랫동안 잠잠하던 휴화산이 활동을 재개하면 정상 부근은 가스 압력으로 말미암아 크게 폭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의 충격으로 주변 수정 결정에 흠집이 생길 가능성은 충분하다. 과거 그러한 실례가 있어 C-Pg 경계층에서 발견된 흠집 난 수정 결정과 관련해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정적 증거
C-Pg 경계층에서 발견된 이리듐과 흠집 난 수정 결정은 공룡 멸종이 혜성이나 소행성 충돌에 따른 것임을 시사한다. 그러나 이것이 공룡 멸종의 직접적인 증거가 되기에는 앞서 얘기한 것처럼 한계가 있다. 공룡 멸종이 극심한 화산활동이 아닌 충돌 사건으로 인한 것임을 강하게 설득할만한 증거가 필요한 것이다.
1989년 미국 샌디에이고 스크립스 해양학 연구소Scripps Institute Oceanography, SIO의 메이순 자오Meixun Zhao와 제프리 배더Jeffery Bada는 덴마크의 스티븐스 클린트Stevns Klint에 있는 C-Pg 경계부 퇴적층에서 두 종류의 아미노산(L-Alanine, D-Alanine)을 발견했다. 이 아미노산의 한 종(D-Alanine)은 오로지 운석에만 존재하는데, 이는 곧 C-Pg 대멸종이 지구 내부의 힘만으로 기인한 사건이 아님을 의미했다.
C-Pg 경계부 지층에는 이리듐뿐만 아니라 지름 2~3mm 정도의 작은 구슬 모양을 한 텍타이트Tektite도 발견되었다. 텍타이트는 지구 표면에 거대한 운석이 충돌했을 때 용융된 물질이 우주 공간으로 튕겨나간 뒤 다시 대기 중으로 들어와 지상으로 떨어지는 과정에서 굳어진 물질이다. 텍타이트는 결정 구조가 없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텍타이트 성분이 결코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질 수 없음을 뜻한다.
혜성 및 소행성 충돌로 인한 C-Pg 대멸종 가설이 여러 가지 설득력 있는 근거를 갖고 있음에도 최근에서야 정설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충돌 사건으로 인한 공룡 멸종을 처음으로 입증하려 했던 학자들이 화석과 지층 전문가가 아니었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공룡 멸종을 야기했다고 여길 만한 충돌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충돌』에서 버슈는 ‘지구과학자들은 상당히 회의적이었다. 도대체 그런 충돌로 생겼을 크레이터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라고 말하고 있고, 1993년 계몽사가 내놓은 『최신 학습 그림 과학』 14편에서는 ‘운석설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세계 최대의 운석공인 밸린저 운석공(지름 1.3km)보다 수백 배나 큰 운석공이 발견돼야 하는데, 그런 것이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며 ‘운석설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쓰여 있다.
다행히 1991년 무렵 멕시코 유카탄 반도에서 발견된 크레이터가 공룡을 멸종시킨 범인의 흔적이라는 논문이 발표되었고, 지금은 그 크레이터가 C-Pg 대멸종을 야기한 충돌 흔적으로 의심의 여지가 없을 만큼 많은 지구과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다.
Written by 지구소년
[참고 문헌]
- Bill Bryson, 이덕환 역, 『거의 모든 것의 역사』 (서울 : 까치글방, 1997), p.214
- The Free Library, "Extinction upon impact?", 1987/5/16, (접속일 : 201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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