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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예보관의 괴로움, "건강 악화 이만저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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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부산 기상대에서 인턴 생활을 했던 대학 후배가 있다. 당시 후배는 기상업무를 보며 여러 어려움을 겪었는데, 특히 날씨 예보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을 가장 힘들어했던 듯하다. 후배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직장에서 익명의 시민이 건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내용은 집중호우와 관련된 것이었다.


어제 부산에 소나기 소식 없었는데 왜 내렸나요?”


후배는 비가 온 이유를 설명하려 했지만, 시민은 말을 틀어막으며 욕을 해댔다고 한다. 애초에 시민은 소나기가 발생한 이유를 들을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저 화풀이 상대로 기상대 직원을 선택한 것. 안타깝게도 후배는 견디다 못해 전화를 건 시민과 말다툼을 하고 말았고, 이 때문에 상관에게 크게 야단맞았다고 한다. 후배는 아마 그 시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생각했으리라 여겨진다.


날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 갑질하고 자빠졌네.’


날씨 예보에 불만을 품고 기상 관서에 전화를 걸어 욕을 뿜어내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실 욕을 듣는 직원들은 후배와 같은 인턴이거나 민원담당자 혹은 대변인들이다. 날씨를 예보한 사람과 직접 통화를 요구해도 실제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정작 화를 당해야 할 예보관들이 스스로 벌인 일에 대한 공갈을 받지 않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 너무 바쁘게 일하기 때문이다.





2014년 나는 날씨 예보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기사화하기 위해 서울 보라매공원에 위치한 기상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두 명의 취재원(기상예보 평가 업무 담당자 김기석’, 방재기상업무 담당자 박세영’)과 인터뷰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사실 이 물음은 간단한 여담을 듣기 위함이었는데, 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취재원들 가운데 가장 긴 얘기를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을 정리한 것이다.


박세영 : 예보관들은 건강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밤을 새워서 일해요.


김기석 : 10년을 야근하면, 10년 생명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면 돼요. 허리 안 좋아지고, 생활이 불규칙해지고 () 밤에 쉬어야 하는데 눈을 뜨고 일하고 있는 거예요. 특히 이가 많이 상하더라고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치과 치료를 많이들 해요. 그래서 어지간하면 예보관을 안 하려고 하죠. 힘든데 누가 하려고 하겠어요.


박세영 : 재난 발생 가능성이 보이면 그런 게 더 심해요.


김기석 : 정말 화장실에 갈 시간 없이 일할 때도 있어요. 태풍 오고 난리 나면 다른 거 할 시간이 없어요. 그럴 때 끝나고 집에 가면 힘 풀리죠. 그런 긴장감이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지는 게 반복되면 건강에 안 좋은 거잖아요.


박세영 : 이런 얘기도 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저희가 잘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그런 수고를 하고 있는 걸 조금이라도 국민들이 알아주신다면, 너무 그렇게 심한 비난을 쏟는 것을 안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가 있어요.


두 취재원의 말을 들어보면 예보관은 거의 매일 야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업무량이 많다는 것인데, 실제로 그러한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그들의 말이 거짓 같지도 않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변하는 날씨와 날씨 예보의 불확실성 때문이다.


나는 대학에서 대기과학을 전공했기에 날씨가 얼마나 변화무쌍한지 잘 안다. 초 단위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분 단위에서 날씨는 완전히 다르게 변할 수 있다. 그래서 날씨를 지속적으로 감시해야 예측이 어느 정도 현실과 맞아떨어진다. 물론, 요즘은 기계가 알아서 날씨를 거의 실시간으로 관측하고, 앞으로 나타날 날씨 자료를 내놓는다. 그러나 이러한 자료를 최종적으로 보고하려면 예보관들의 검사와 판단이 필요하다.


혹자는 수치예보모델 결과를 그대로 가져다 쓰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사실 모델을 통해 얻은 결과는 어느 정도 불확실한 면이 있다(그 이유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논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델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도 있다. 이 때문에 기상청에는 모델의 불확실한 자료를 고치고 시간에 따라 변화 가능성이 있는 모델 결과를 주시하며 계속해서 예보를 수정해나가는 예보관이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결국 기계가 아니라 예보관이 날씨를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셈이다.


기상 예보관이 겪는 괴로움의 원인은 그들의 눈과 귀에 들어오는 국민들의 상욕 섞인 악의적 비난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은 밤낮없이 국민들에게 앞으로 나타날 날씨를 전달하기 위해 보고서를 내놓는다. 이에 따라 생기는 건강상의 문제가 그들을 옥죄는 괴로움의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 거의 매일 10년 동안 야근, 야간자율학습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지 않는 게 이상한 것이 아니겠는가.


글쓴이 : 지구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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