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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공룡은 어떻게 멸종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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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 대멸종은 지구 역사(인류 역사가 아니다)에서 자주 일어났던 사건이다. 그중에서 널리 알려진 사건은 6,500만 년 전 이루어진 C-Pg 대멸종이라고 보는데, 이때 공룡이 멸종했기 때문이다. C-Pg 대멸종은 중생대 백악기(Cretaceous)와 신생대 고 제3기(Paleogene) 사이에 해양생물의 75%를 포함한 지구 전체 생물종의 60%(이 수치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가 갑자기 사라졌다고 해서 백악기와 고 제3기의 영어 글자, Cretaceous의 앞 글자인 'C'Paleogene의 앞 글자와 중간 글자인 'Pg'를 따 불리고 있다.

 

C-Pg 대멸종은 중생대 백악기-신생대 제3(Cretaceous-Tertiary) 대멸종, 다시 말해 C-T 대멸종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최근 국제층서위원회(International Commission on Stratigraphy, ICS)가 공식 발표한 지질연대표에서 신생대 제3(Tertiary)가 없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한편, 백악기는 독일어 Kreide에서 유래하기 때문에 C-Pg가 아닌 본래의 K-Pg로 쓰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유래를 자세히 서술한 전문적인 글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C-TK-Pg가 아닌 C-Pg로 명시한다.

 

1980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의 물리학자 루이스 앨버레즈는 C-Pg 대멸종이 운석 충돌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와 그의 동료들이 발견하고 분석한 자료가 명백하게 그의 생각을 뒷받침하고 있었다. 앨버레즈의 주장이 세상에 드러나기 전까지 많은 지질학자들은 C-Pg 대멸종의 원인을 지구의 화산활동에 기인한 기후 변화라고 판단했다. 확신할만한 증거가 없었지만 정황상 그 어떤 가설보다 적절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몇몇 학자들이 이 가설을 지지하는 것을 보면 당시 그 판단에 상당히 신뢰할만한 근거가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참고로 오늘날 공룡 멸종이 일어난 이유를 설명하는 정설은 '운석 충돌설'이다.

 

20세기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과학계는 운석 충돌을 어이없는 것으로 치부했다. 심지어 한 유력 신문은 혜성과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하는 사건에 대해 'Giggle Factor(웃음 거리)'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당시 그 문제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주장이 제기될 때마다 사람들이 피식하고 웃음을 지었던 데서 나온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때의 사람들은 그런 어마어마한 충돌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과거에 충돌이 일어났던 흔적을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브레대포트 운석충돌구(Vredefort Dome)은 직경이 300km 정도로, 지구에서 발견된 가장 큰 운석충돌구로 알려져 있다. 옛날 사람들은 이 구덩이가 너무 큰 나머지 운석이 충돌한 곳이라고 인지할 수 없었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 운석충돌구(meteorite crater)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과학계는 앨버레즈의 주장을 긍정적으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19947월 슈메이커-레비 9 혜성(Comet Shoemaker-Levy 9, 여기서 '9'는 슈메이커 부부와 레비가 발견한 9번째 혜성임을 지칭한다)이 목성과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당시 세간에 무척 신비하고 멋있는 이른바 우주쇼였지만, 전 세계 천문학자들에게는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다.

 

슈메이커-레비 9 혜성이 목성과 충돌했을 때 인류는 우주에 천체망원경을 띄울 정도로 정교한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목성에 충돌한 혜성 파편 지름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하지 못했다. 충돌 시 화구의 크기는 어느 정도 측정되었는데 놀랍게도 파편 하나의 충돌 화구가 지구만 했다. 종착지가 목성이었길 망정이지 지구였다면 대멸종이 재현되고도 남는 사건이었다. 문제는 그런 혜성이 꼭 지구로 향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없었던 것. 더 큰 문제는 당시까지 지구와 충돌 가능성이 있는 혜성이나 소행성의 정보가 전무했다는 사실이다.

 

 

슈메이커-레비 9 혜성이 목성과 충돌했을 때의 위력은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졌던 원자폭탕의 4억 배 정도로 현재 추측되고 있다. 사진은 허블 우주 망원경에 포착된 슈메이커-레비 9 혜성의 파편들 [Image Credit: NASA, ESA, and H. Weaver and E.Smith (STScl)]

 

슈메이커-레비 9 혜성의 충격 때문일까.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공군(USAF)1998년 공동으로 지구 근접 소행성(Near Earth Object, NEO)을 찾는 계획을 실시했다. 이 계획은 되도록 태양계 내에 있는 모든 소행성의 궤도를 추적함으로써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할 가능성을 점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우리는 현재 각 언론 매체를 통해 지구 밖 거대한 바윗덩어리가 지구와 충돌할 확률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정보는 대부분 NEO 계획 덕분이다.

 

만약 루이스 앨버레즈와 그의 동료들이 C-Pg 대멸종을 야기한 운석 충돌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면 어떠했을까. 아마도 운석 충돌은 많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것이고, 이로 인해 슈메이커-레비 9 혜성의 목성 충돌은 과학계와 더불어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참고로 슈메이커-레비 9 혜성은 개인이 발견한 것이다). 앨버레즈와 그의 동료들은 공룡 멸종의 수수께끼만 풀어 놓은 게 아니라 인류 생존의 발판을 마련했다.

 

Written by 지구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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