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주

우주 탄생 이론, '빅뱅'에 숨겨진 이야기

반응형

미국의 저명한 작가 빌 브라이슨(Bill Bryson)이 쓴 거의 모든 것의 역사(원제 : Short History of Nearly Everything)에는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이 인정하고 있는 우주 기원설인 대폭발 이론, 즉 빅뱅설(Big Bang theory)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혹은 배웠던) 교과서적인 설명이 아니라, 연구도 하지 않았는데 노벨상을 받고 웃음거리로 등장한 말이 과학 용어가 된 아이러니한 세상이 들어 있다.

 

대폭발 이론은 20세기 초반 벨기에 성직자이면서 학자였던 조르주 르메트르(Georges Lematîre)가 별다른 근거 없이 상상으로 제안한 가설이다. 이 이론은 당시만 해도 획기적이어서 천문 및 물리학계에 관심을 받았을 것으로 보이지만, 근거가 상상이었던 탓에 그의 주장을 진지하게 연구하는 학자는 실제로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 1960년대 중반 젊은 두 전파천문학자의 우연한 발견으로 대폭발 이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들은 대폭발 이론과 관련해 노벨상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노벨상을 받아야 할 인물들은 따로 있었다.

 

1960년대에 미국 프린스턴 대학 로버트 디키(Robert Henry Dicke) 연구진은 우주에서 대폭발의 잔재인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노 펜지어스(Arno Allan Penzias)와 로버트 윌슨(Robert Wodrow Wilson)이라는 이름의 두 청년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된다. 펜지어스와 윌슨은 당시 미국 뉴저지 주의 홈델에서 대형 통신 안테나를 활용할 방법을 찾고 있었는데 지속적으로 들려오는 잡음 때문에 도무지 그들이 원하는 실험을 할 수 없던 상태였다. 전화의 내용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그들의 도움 요청이었다.

 

디키 연구진은 펜지어스와 윌슨이 언급한 잡음이 우주배경복사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머지않아 <천체 물리학 저널(The Astrophysical Journal)>에 두 편의 논문이 실렸다. 자신들이 경험한 잡음을 설명하는 펜지어스, 윌슨의 논문과 그 현상의 원인을 밝혀낸 디키 연구진의 논문이 그것. 펜지어스와 윌슨은 우주배경복사가 무엇인지 몰랐고, 그것을 해석한 논문을 내놓지 않았음에도 1978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프린스턴대 과학자들은 노벨상을 받지 못 했다. 단지 위로만 받을 뿐이었다.

 

 

방송이 없는 아날로그 TV 채널에서 무질서하게 물결치는 무늬 중 1% 정도는 오래전에 일어났던 대폭발의 잔재인 우주배경복사 때문에 생긴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빅뱅(Big Bang)'과 관련해 먼저 아이돌 그룹을 떠올릴 것이다. 빅뱅 팬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빅뱅은 조롱의 의미가 담겨 있다. 빅뱅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혹자는 당혹할 것이다. 빅뱅은 대폭발에 의해 현재의 팽창우주가 만들어졌다는 이론의 영문명이고, 아이돌 그룹 빅뱅은 아마 그러한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 짐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빅뱅의 내용이 아니라 빅뱅이라는 단어의 등장 배경이다.

 

빅뱅은 영국의 우주론 학자 프레드 호일(Fred Hoyle)에 의해 등장했다. 그는 1952년 라디오 방송을 통해 대폭발 이론을 비웃으며 'Big Bang'이라고 표현했다. 호일은 아마도 "크게 쾅(Big Bang) 하더니 우주가 탄생했나 보죠?"라며 조롱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다른 뜻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빅뱅의 '(Bang)'은 얌전한 단어가 아니다. 단순히 의성어이기 때문이 아니라, 영어권에서 여성과 관계를 맺는다는 남성들의 은어로 쓰이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호일은 "여성과 엄청난 관계를 하더니 우주가 탄생했나 보죠?"라는 의미로 빅뱅이라고 표현했는지 모른다.

 

빅뱅을 우리나라 말로 직역하면 '큰 쾅'인데, 이를 과학 용어로 받아들이기에는 어색한 면이 없지 않다. 우주의 기원을 설명할 때 "요즘 우주 기원설은 '큰 쾅'이 대세죠."라고 진지하게 말하면 청자는 희극에 사용되는 말로 받아들일 듯하다. 차라리 빅뱅보다는 대폭발 이론의 실마리를 제공한 르메트르의 이름을 따 '르메트르 이론'이라고 하거나 그가 제시했던 '원시 원자 가설'을 차용해 쓰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그리고 앞서 얘기했듯이 빅뱅은 비웃음으로 등장한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말이 전 세계 학계에서 쓰이고 있다. ()에서 유()를 창조한 우주 탄생을 연상시킬 단어가 없어서 일까. 아니면 대중 사이에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일까. 이에 관한 내용이 책에 나와 있지 않은 게 아쉬울 뿐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칭찬을 받아야 할 인물이 오히려 질책을 당하고, 아무것도 알지 못해 얻을 것이 없는 이들이 이른바 로또 맞은 것처럼 횡재를 하며, 같은 비웃음을 당해도 이 사람에게는 액운이, 저 사람에게는 행운이 오는 경우를 종종 목격하거나 듣는다. 이 때문에 인생은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생각이 드는데 과학계도 마찬가지다(우주배경복사가 무엇인지 몰라도 노벨상을 받았던 펜지어스와 윌슨처럼). 앞으로 나는 이와 관련된 글을 가끔 쓸 예정이다.

 

Editor: Kim, Jong-baek(지구라트)

반응형